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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커리 축제(Kukeri Festival) – 불가리아의 악령 쫓기 의식

by 반짝달달 2025. 5. 18.

➤ 불가리아에는 괴물 복장으로 마을을 행진하며 새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오늘은 '쿠커리 축제(Kukeri Festival) – 불가리아의 악령 쫓기 의식'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쿠커리 축제(Kukeri Festival) – 불가리아의 악령 쫓기 의식
쿠커리 축제(Kukeri Festival) – 불가리아의 악령 쫓기 의식


혹시 거대한 가죽 가면을 쓰고, 온몸에 방울을 달고, 요란하게 춤추며 행진하는 괴상한 무리들을 본 적이 있나요? 불가리아에서는 매년 초 이런 모습이 거리 곳곳을 가득 채웁니다. 이들은 단지 공연하는 예술가가 아니라, 고대부터 이어져 온 풍습을 실천하는 ‘쿠커리(Kukeri)’들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악령을 몰아내고 새해의 건강과 풍요를 기원하는 쿠커리 축제의 유래, 현장 풍경, 문화적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 쿠커리의 기원

쿠커리 축제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이 전통은 고대 트라키아 문명에서 유래되었으며, 그 뿌리는 기원전 6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사람들은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기 전, 어둠과 추위, 악령을 몰아내기 위해 가면을 쓰고 소란스럽게 춤을 추며 의식을 거행했습니다.

‘쿠커리(Kukeri)’라는 단어는 남성 가면 무용수를 의미하며, 주로 마을의 성인 남성 혹은 젊은 청년들이 참여합니다. 그들은 동물 가죽, 수염, 나무나 금속으로 만든 괴물 같은 가면을 쓰고, 허리에는 무거운 방울을 매달아 요란한 소리를 냅니다. 이는 악령을 놀라 도망가게 하려는 상징적인 행위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의식이 기독교 이전의 이교(異敎) 풍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도입된 후에도 이 전통은 현지 문화와 자연스럽게 융합되어 지속적으로 계승되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불가리아 각지에서 매년 초 열리는 이 축제는 지역의 정체성과 신앙, 농경사회의 전통을 동시에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2) 화려한 공포 – 쿠커리 축제의 생생한 현장

쿠커리 축제는 보통 1월 말에서 3월 초 사이에 열리며, 불가리아 전역에서 다양한 규모로 진행됩니다. 그중 가장 큰 행사는 페르닉(Pernik)이라는 도시에서 열리는 ‘수르바카리 페스티벌(Surva Festival)’입니다. 이곳에는 수천 명의 쿠커리들이 전국에서 모여 퍼레이드, 무용, 전통 의식을 펼칩니다.

행사 당일, 쿠커리 복장을 한 사람들은 동네 골목이나 중심 거리에서 북소리와 함께 행진을 시작합니다. 이들의 복장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동물 가죽과 뿔, 털, 색색의 장식, 손에는 나무망치나 도끼를 들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사람들을 향해 장난스럽게 위협하며 웃음과 놀람을 유도합니다.

중요한 부분은 쿠커리가 단순히 악령을 쫓는 존재가 아니라, 새로운 생명과 풍요의 상징이라는 점입니다. 이들이 마을을 돌아다니는 동안, 주민들은 문을 열고 음식을 나누며 새해의 복을 기원하고, 아이들은 쿠커리에게 행운을 빌어달라고 기도합니다.

퍼레이드 외에도 전통 음악, 민속 무용, 불꽃놀이, 공예품 마켓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함께 진행되어 지역 주민과 관광객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풍성한 축제의 장이 됩니다.

 

3) 공동체와 신념의 힘 – 쿠커리의 문화적 의미

쿠커리 축제는 단순한 민속 공연을 넘어서, 집단 정체성과 사회적 역할의 재확인이라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합니다. 축제에 참여하는 남성들은 가면 뒤에서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으며, 마치 일시적으로 ‘다른 존재’로 변신합니다. 이 과정에서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난 상징적 해방이 이루어지며,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재인식하게 됩니다.

또한, 이 축제는 세대 간 전승의 의미도 큽니다. 많은 지역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쿠커리 복장을 물려주며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쿠커리 복장은 직접 수제작해야 하며, 그 복잡함과 정성은 가문과 지역에 대한 자부심으로 이어집니다.

불가리아 정부와 유네스코 역시 이 전통을 보존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특히 2015년, ‘수르바카리 페스티벌’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후보로 선정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문화 유산은 단순한 관광자원 그 이상으로, 과거와 현재, 개인과 공동체를 잇는 귀중한 연결고리가 됩니다.

 

 

쿠커리 축제는 겉으로 보기엔 무섭고 요란한 퍼레이드 같지만, 그 안에는 공동체의 안전과 건강, 풍요를 기원하는 진심 어린 바람과 신념이 담겨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점점 잊혀져 가는 공동체 의식, 자연과의 연결, 그리고 신화적인 상상력을 되살리는 이 특별한 축제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만약 여러분이 유럽 겨울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 독특한 축제를 직접 경험해보는 건 어떨까요?